내가 출판번역을 고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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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Life/번역가의 일상

내가 출판번역을 고집하는 이유

by 글 쓰는 번역가 2021.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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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역서가 나온 날이 떠오른다.

당시에 살던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청량리 영풍문고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번역한 책이 언제 출간되나 오매불망 기다리며 네이버 검색 창에 책 이름을 쳐보던 시절이었다. 

서점에서 처음 그 책을 보았을 때 나는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욕망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직접 쓴 책이 아니었기에 내 책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표지에 찍힌 내 이름만 보였던 당시의 나에게 그 책은 내가 쓴 책이나 다름없었다.

 

내 옆에는 순수한 기쁨을 함께 나눌 엄마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지 싶다. 엄마 역시 나 만큼이나 환히 웃고 있었으므로. 

몇 년 전, 내가 번역한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엄마가 교보문고에서 그 책을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사진 속 엄마를 보니 첫 책이 나왔던 그때가 생각났다.

내가 출판 번역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술 번역을 하면 돈은 조금 더 벌지도 모르지만 엄마의 이토록 환한 웃음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물성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함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물론 역서가 늘어난 지금은 더 이상 출간되는 역서 한 권 한 권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사실은 그럴 때도 있다).

 

그때의 감정이 조금씩 희석되고 있어서 그런지 출판사에서 집으로 보내주는 증정본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후기를 찾아볼 여유도 없고 해외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서점에 진열이 되었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 되고 있다(이것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물론 더 마음이 가는 책도 있다. 아동 도서를 두 권 번역한 적이 있는데 그림이 대부분이라가 권 당 번역료가 5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수정 작업은 한도 끝도 없었기에 돈을 바라고 한 작업은 절대 아니었다.

 

완성된 책은 예뻤고 내 아이에게 읽어주니 좋았다. 증정본으로 받은 나머지 두 권을 지인에게 나눠주는 기쁨도 누렸다.

 

 

번역을 하다 보며 증정본이 많아지기 때문에 주위에 나눠줄 책이 많아진다고 말하는 번역가도 있다. 

나의 경우 기껏 해 봤자 증정본을 1권이나 3권, 많아봤자 5권 정도밖에 못 받는지라 지인들에게 나눠줄 책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필요한 이에게 공짜로, 그것도 내 이름이 찍힌 책을 선물로 줄 때 얻는 짜릿한 기분은 또 다른 책을 번역할 힘을, 살아갈 힘을 준다.

 

책이 나올 때마다 기분이 급상승하지는 않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이 같은 나눔의 기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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