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출판 번역가가 받는 번역료는 데뷔 방법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원래 업계의 최소 번역료는 매당 3,500원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많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저 가격이 업계 최소 가격인지조차 모르고 1인 출판사에서 제안하는 2,500원을 받아들여 그 가격에서부터 진행했었죠.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저의 번역료를 조정하기는 했지만 출판사에 초보자가 3,500원이라는 가격을 제안하면 대부분 거절 의사를 보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에이전시를 끼고 일하지 않는 한 저 번역료를 100퍼센트 보장받을 수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 업계 최저가라는 3,500원을 기준으로 번역료의 계산해보겠습니다.
1권의 책을 번역하는 데에는 보통 2~3개월 정도 걸리며 한 권을 번역하면 4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 들어오겠죠(평균적인 가격이며 책의 난이도와 분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1년 동안 5, 6권의 책을 번역한다면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잘 나가는 회사원의 연봉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번역가가 보통 하루 종일 번역만 하는 게 아님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입이죠.
한 번에 두 권 이상 진행하거나 기술 번역과 병행할 경우 이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 역서가 쌓이고 경력이 쌓일수록 나의 몸값이 점점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번역가는 매당 5,000원, 많게는 6,000원까지 받고 있죠.
자, 그렇다면 업계 최저가라는 3,500원이 왜 보장이 되지 않는가, 라는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번역가의 밥줄이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이 문제를 이렇게 보기로 했습니다.
출판계 관계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번역 실력이 어느 정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최소 번역료를 보장해줄 리가 없다고요.
에이전시에 소속된 번역가처럼 어느 정도 번역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는 번역가의 경우 대체로 3,500원이라는 최소 금액을 받은 상태로 데뷔합니다.
에이전시에서는 아무나 자신들의 번역가로 받지 않기 때문이지요. 앞서 살펴본 아카데미에서처럼 시험을 치르고 실력이 입증되어야 전속 번역가로 등록시켜줍니다.
그런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은 알아서 에이전시든 출판사든 뚫어야 하는데 10년 전의 저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은 글쓰기 실력, 한국어 실력이었습니다.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집중적으로 그 부분을 연습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만 해도 저는 그걸 몰랐고 별도로 연습할 생각도 못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출판사에서 가장 신경 써서 보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영어 실력보다도 더 집중적으로 보는 부분이지요.
김택규 작가 역시 자신의 책에서 그 사실을 밝힌 바 있습니다. 번역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후배를 번역가로 소개해주는데 그 후배의 중국어 실력은 보지도 않았다고, 한국어 실력만 보았다고요.
제가 10년 전 데뷔했을 때 글쓰기 실력도 한국어 실력도 자신 있었다면 그렇게 낮은 단가에는 일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조차도 자신이 없었기에 상대가 주는 번역료에 그냥 만족했던 것이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출판번역가가 되려면 낮은 실력과 낮은 번역료에 만족하는 대신 처음부터 기본 실력을 어느 정도 세팅해 놓고 합리적인 번역료로 시작하라는 말씀을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저 역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저는 업계 기본 번역료를 받기 위해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번역가로 빨리 데뷔하고 싶어 일단 한 권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에 낮은 단가로 시작하겠다고 하면 말릴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권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런 식으로 책 번역을 시작하면 어설픈 실력으로 오역을 내기도 하고 나의 몸값이 올라가는 과정도 더디게 진행될 뿐입니다.
번역가는 로또와는 거리가 먼 직업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성실히 쌓아 올리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번역은 내가 한만큼 그대로 드러나는 일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발전 속도가 조금 굼뜰 수 있어요. 거기서 거기인 번역료나 실력에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프리랜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정말 낮은 가격에 무수히 많은 번역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수요도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그런 수요에 맞는 품질의 번역을 제공하는 이들도 있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책을 번역하려는 사람이라면 목표를 조금 더 높게 잡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낮게 시작하면 계속 낮게 가게 됩니다. 그러니 나의 시작점을 스스로 낮추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세요.
실력을 높여서 나의 몸값도 함께 높이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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