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이 번역가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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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Life/번역가의 일상

공대생이 번역가가 된 사연

by 글 쓰는 번역가 2021.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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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출판번역가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공대를 졸업했다.

공학적인 머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내가 공대를 선택하기까지는 우리네 삶의 많은 결정들이 그렇듯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인이 작용했을 거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커녕, 직업의 세계에 대한 현실감이 전혀 없던 당시의 나는 대한민국의 무수히 많은 고등학생들처럼 전혀 엉뚱한 곳,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었고 그렇게 나의 진로를 쉽게 결정해 버렸다.

부모의 기대를 업고 반쯤 정해진 진로를 택한 언니와는 달리 약간은 자유방임주의적 노선이 가능했던 둘째 딸의 진로였다.

 

 

학부 생활을 하던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건축가가 되리라는 생각이 확고했던 내가 언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선배들에게서

“너네 집 갑부냐?”

라는 질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조언을 들었을 때였는지, 과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이민을 가버렸을 때였는지, 내가 생각한 수업과는 다른 공대 수업에 지쳤을 때였는지.

 

그토록 원하던 건축과 수업을 들을 때에도 나는 아무런 열정 없이 그저 꾸역꾸역 학점만 채워나갔다. 별도로 과외를 받은 사람만이 따라올 수 있을 것만 같은, 배운 거 없이 토해 내기만 해야 하는 설계수업에서 나는 자꾸만 겉돌았다. 어떤 이질감을 느꼈던 것도 같다.

졸업과 취업, 그 후

졸업을 하고 빨리 취업을 하고 싶었던 나는 유학 따위는 생각해볼 틈도 없이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취업난이 시작되기 전이었던 2005년 무렵이라 그럭저럭 몇 번 만에 대기업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곳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입사해 몇 년 간 잘 다녔다. 회사 생활은 쉬울 때도 어려울 때도 있었고 그때 번 돈, 모은 돈은 효도에도, 나의 삶에 기름칠을 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하지만 화려한 대기업 생활의 이면에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했고 늘 방구석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자아가 언제부턴가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애를 낳은 후에도 그곳에서 일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고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업무 속에 지쳐갔다. 회사를 다니기 싫었던 건 아니었으나 딱히 한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어정쩡해져 버린 나의 위치가 탐탁지 않았다. 첫 단추를 잘못 꿴 상태로 그냥 밀로 나가는 기분이었는데, 아닌 걸 알면서도 계속 가보는 건 나답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온 방황의 시간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나갔고 어느 순간 더 이상은 회사에 있을 수 없었다.

 

 

공대에 들어간 2000년부터 회사 생활을 마치기까지의 10년이 잘못된 길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내가 진짜로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들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지금의 길로 바로 들어섰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지금의 생활에 감사하기는커녕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알 수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작용해 지금의 나는 이 자리에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만 까딱했어도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을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렇게 출판번역가가 되었다.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을 할 당시 글을 쓰고 영어를 좋아한다는 두 변수가 크게 작용해 나는 번역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때 내 선택지에는 플로리스트도 있었다. 플로리스트라니, 지금의 삶과 얼마나 동떨어진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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