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 하는 엄마
본문 바로가기
번역 Life/번역가의 일상

집에서 일 하는 엄마

by 글 쓰는 번역가 2021. 10. 6.
반응형
SMALL

딸깍, 잠근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두 아이가 동시에 눈을 반짝이며 달려든다.

 

걸그룹의 인기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두 아이는 서로 질세라 엄마에게 달라붙고 나는 잠시나마 두 아이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넘치는 애정을 독차지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금세 사나운 동물로 돌변하고 나는 나를 향해 막무가내로 뛰어드는 둘째를 들어 거실에 내동댕이치다시피 던지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재빨리 문을 잠근다. 

 



오늘도 잘 버텨냈구나. 하루가 끝나가는 이쯤 되면 나도 모르게 자그마한 한숨이 나온다.

오늘도 무탈하게 보냈구나. 이렇게 하루를 또 건넜구나.

 

하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처음부터 정확히 똑같은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 문은 열려 있을 때도 있고 닫혀 있을 때도 있지만 나의 하루는 거의 똑같이 흘러간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숙고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내 아이를 간절히 원했었다.

첫째 아이를 낳은 이후 3년, 그로부터 또 3년이란 시간을 나는 참는 게 특기인 사람으로 살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수가 수반되었다. 내 욕심이었겠지만 나는 그 변수들을 잘 뛰어넘고 싶었다. 내 앞에 버티고 선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었다. 



아이들이 있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 덕분에 분명 나는 그 전보다 대체로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보지 못했던 세상 너머의 누군가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낳았을 한 사람을 생각하며 타인의 입장에서 오롯이 생각해볼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엄마가 된 건 잘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육아와 살림, 번역이라는 본업을 함께 끌고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아이를 낳을지, 또 이러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이들은 집에서 일하는 엄마를 가만두지 않고, 엄마가 노트북 앞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꼴을 가만히 보지 못한다. 

 

그래서 집중해야 하거나 막판 수정 작업에 들어갈 때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을 때, 주말이면 아예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한다. 언제까지 이 삶을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 나아지겠거니 생각한다.

 

 

집에서 일하는 엄마에 대한 환상은 이제 없다. 주위의 많은 엄마들이 코로나로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에게 그동안 어떻게 집에서 일했느냐는 질문을 해온다. 하하, 그저 웃을 뿐.

 

프리랜서로 일하는 한 이 같은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그래온 것처럼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수밖에.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훌쩍 커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노트북을 켜는 나이다.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