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로 살아가려면/중견 번역가가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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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Life/번역가의 일상

번역가로 살아가려면/중견 번역가가 살아남는 법

by 글 쓰는 번역가 202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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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는 어떻게 그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다.

 

변호사나 의사처럼 확실한 경로가 눈에 읽히지 않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번역 일을 시작하기 전에 너무 막막해 인터넷 검색 창에 “출판번역가 되는 법”을 찾아보았다. 별로 도움 되는 얘기가 없었는지 결국은 서점에 가서 <나도 번역 한 번 해볼까?>라는 책을 사 와 읽고 또 읽었던 기억밖에 없다.

가수라면 앨범을 낸 뒤 스스로를 가수라 할 수 있지만 배우는 어딘가에 출연해야, 다시말해 누군가 나를 써 줘야 배우가 된다.

 

그런 면에서 출판번역가는 가수보다는 배우에 가깝다. 인맥 없는 배우가 업계 관계자에게 얼굴을 알리려고 애쓰듯 출판계에 인맥이 없는 번역가들은 자신을 알리려고 온갖 방법을 궁리한다.


어제는 검색 창에 "중견 번역가가 살아남는 법"이라고 쳐봤다.

 

노승영 번역가는 고맙게도 중견 번역가가 된 이후 작업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중견 번역가가 아닌 건가.

 

 

김택규 번역가가 쓴 <번역가 K가 살아남는 법>의 부제는 비장하게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이다.

 

이 책의 표지에는 살아남기 위해 팔이 네 개가 된 번역가님이 그려져 있다. 나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조금 앞서가고 있는 선배들이 펼쳐 보이는 다양한 행로에서 답을 찾아볼까 한다.

글도 쓰고 번역도 하는 선배들이 많다.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함께 쓴 박산호 번역가와 노승영 번역가도, <먹고사는 게 전부는 아는 날도 있어서>를 쓴 노지양 번역가도 글과 번역이라는 이층 집을 차곡차곡 지어 올리고 있다.

 

나의 미래를 꿈꾸게 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데, 한편으로는 허황된 꿈도 꿔 본다. 작은 책방을 차려 커피도 팔고 손님이 없을 때는 번역도 하는 그런 모습을.

 

내 안의 낭만주의자는 가슴 한 편에 그런 시나리오를 품고 있는데...현실성이라고는 1도 없는 그 꿈을 언젠가는 펼쳐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용기를 내는 날에는 홍보 전문가를 모셔 와야 할지도. 나는 마케팅에는 정말 무지렁이니까.

 

번역가들 사이에서는 경쟁보다는 동질감이나 연민이 우선 작용한다. 큰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는 거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얼마나 궁상떨면서 일하고 있을지 짐작이 되기 때문에 서로의 역서가 나오면 마음껏 축하하게 된다.

 

축하 글이 잔뜩 달린 피드를 보면서도 서로의 돈벌이를 생각하며 속으로는 한숨을 짓게 된다. 어쩜 우리 번역가라는 종자들은 돈으로 충족하지 못한 부분을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으로 보충하려 하는 걸지도 모른다. 

멋진 선배 중에는 권남희 번역가도 있다. 권남희 번역가는 <오늘은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라는 장에서 번역가가 직장인만큼 벌려면 한 달에 1,000매를 번역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1,000매를 번역하려면 두 달이 걸리는데, 역시 더 많이 했어야 했다.

 

이것저것 딴 데 한 눈 팔기 전에 내가 원래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더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건지도. 역시 프로는 기본에 충실한 자였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일을 해봤자 얼마나 더 오래 하겠어 눈이 너무 침침해지면 그만둬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윤여정 배우님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을 보고 마음을 바뀌었다. 

“60살 넘으면서 웃고 살기로 했어. 전에는 생계형 배우여서 작품을 고를 수 없었는데, 이젠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에는 돈 안 줘도 출연해. 마음대로 작품을 고르는 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사치야.”

“전에는 생계형 번역가여서 작품을 고를 수 없었는데, 이젠 좋아하는 작품은 돈 안 줘도 번역해. 마음대로 작품을 고르는 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사치야.”라고 말하는 내가 얼마나 근사하게 보일지 보지도 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은퇴할 뻔했다.

 

직장인들이 평균적으로 퇴직하는 나이가 마흔아홉 살이라고 한다.

 

나의 진정한 가치는 모두가 퇴직한 이후 꽃필지도 모르겠다.

 

권남희 번역가는 “80대까지 점점 무르익은 번역을 하겠다”라고 했다. 80이면 60 하고도 20년 후다.

 

자유롭고 멋진 할머니라는 남의 꿈을 기웃거릴 게 아니라 그 무렵의 나를 구체적으로 상상한 뒤 내 길을 가는 데 집중해야겠다.

 

그때가 되면 돈과는 상관없이 좋아하는 작품을 골라가며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후배들이 이제 그만 좀 하시라고, 그렇게 봉사하듯 번역을 해 주면 우리는 어떡하느냐고 다그쳤으면 좋겠다. 조금은 곤란한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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