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공부하는 법(외국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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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Life/번역가 되는 법

번역공부하는 법(외국어 공부)

by 글 쓰는 번역가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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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배움은 ‘모르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잠시 제쳐두고 무엇을 모르는지 현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우선이다.  

 

대부분 외국어를 해석할 줄 알면 번역 좀 한다고 생각한다. 해석을 잘 하면 번역의 기본은 됐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해석=번역이라면 독해 능력만 기르면 되지 굳이 번역하는 방법을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든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든 중요한 건 자연스러운 도착어(Target Text)를 구사하는 능력이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어 실력이며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에는 반대로 외국어 실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에도 원문을 제대로 파악한 뒤 외국어로 옮겨야 하므로 외국어만 잘하는 교포처럼 한국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번역하기 쉽지 않다.

 

외국어 좀 잘한다고 번역을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한 문장이라도 번역해 보기 바란다. 생각만큼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번역이 되지 않을 거다. 머릿속에서 대강 해석한 것을 글로 적어보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뜻을 아는 것과 이를 제 3자에게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번역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의 현 실력을 점검받아보자. 주위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되고 온/오프라인 수업을 활용해도 좋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의 객관적인 실력을 파악했으면 이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할 차례다. 번역가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크게 외국어와 한국어 공부, 글쓰기 연습, 번역 기술 공부를 할 것을 권한다. 우선 외국어 공부 방법부터 살펴보자.

 

 

번역은 외국어를 한국어로 혹은 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기는 일이기 때문에 외국어 공부는 필수다. 문제는 번역 공부를 한답시고 무작정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옮기다 보면 번역 실력이 어느 정도 향상되겠지만 외국어 실력이 정말로 향상되는 건지는 의문이다.

 

효율적인 번역 공부 방법은 외국어 실력부터 키우는 것이다. 오역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다. 제대로 해석조차 못 하는데 무작정 번역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에는 다양한 유형의 글을 골고루 읽어 다양한 문체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어에도 온갖 종류의 글이 있는 것처럼 외국어로 쓰인 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기사문도 읽어보고 묘사문도 읽어보고 광고문도 읽어봐야 한다. 딱딱한 문체도 읽어보고 대화체나 서사체도 읽어보고 유머러스한 문체도 읽어봐야 한다. 뜻을 모르겠거든 번역본을 구해 함께 읽어보거나 주위에 물어봐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다양한 글을 읽을 때는 각 글의 특징과 특정 유형의 글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구나 어휘를 눈여겨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외국어에서는 일부러 딱딱한 어휘를 사용해 격식을 차렸는데 번역문에서 가벼운 어휘를 사용해 글의 수준을 확 낮춰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번역가는 의미만이 아닌 형식과 느낌도 번역할 줄 알아야 하므로 다양한 유형의 글을 읽으며 감을 익히는 과정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와인 감식가나 바리스타가 그러는 것처럼 번역가는 글의 미묘한 온도를 잡아낼 줄 알아야 한다.

 

짧은 글을 여러 개 읽기도 해야 하지만 원서처럼 호흡이 긴 글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원서는 외국어의 구조와 표현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에 나온 표현을 내 번역문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권의 책처럼 긴 글은 논리를 놓치지 않는 연습을 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짧은 글과는 달리 글이 길어지면 논리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복잡한 논리를 파악하는 연습을 하려면 몇 백 페이지에 달하는 원서를 읽어야 한다.

 

요즘에는 오디오북이 잘 나와 있어 학습 효과를 두 배로 높일 수 있다. 보기만 해서는 쉽게 잊기 마련인데 청각을 통해 한 번 더 되새김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서만으로는 뜻이 다소 애매하거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때 성우의 호흡이 끊기는 곳을 따라 읽다 보면 뜻이 뚜렷하게 드러나곤 한다.

 

외국어 공부를 위해서는 다독과 정독을 골고루 해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글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고 그중 하나를 골라 꼼꼼히 읽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최종 목표가 책을 번역하는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글을 꼼꼼히 읽기도 해야 하지만 가능한 한 많은 글을 접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중에 나에게 어떠한 책이 의뢰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 외국어로 자연스럽게 번역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외국어 표현을 암기해야 한다. 우리가 한국말을 잘 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암기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에도 이 암기가 상당히 중요하다. 어색한 표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암기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에는 암기한 표현을 그대로 갖다 써야지 창의적으로 외국어 표현을 만들어 쓰면 안 된다. 초보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이 만든 문장이 원어민이 쓰는 문장인지 궁금하다면 구글 홈페이지에 들어가 해당 문장에 큰따옴표를 친 뒤 이 문장을 쳐보면 된다. 실제 사용되는 예시 문장의 개수가 나올 것이다. 문장의 개수가 꽤 된다면 원어민이 사용하는 표현이 확실하다. 하지만 100개 미만이거나 한글 논문 등이 출처라면 원어민이 사용할 확률이 적은 표현이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번역가일지라도 온갖 표현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지는 않으며 해당 외국어의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문장을 손쉽게 구사할 수 있지는 않다. 따라서 문법적으로 맞는 표현인지 항상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되는데 구글은 이럴 때 상당히 유용하다.

 

 

문법 공부는 굳이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지만 한 번쯤은 검토해 보는 것이 좋다. 문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오역을 내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길 때에도 생각보다 문법적인 실수가 많이 발생한다. 가정법이나 시제 등 까다로운 문법에서 계속해서 실수한다면 그 부분만이라도 집중적으로 살펴보기 바란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문법이 100퍼센트 올바른 원서는 없다. 저자 역시 문법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번역가는 그것조차 집어낼 수 있어야 하겠지만 글을 쓴 사람도 문법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한 채 내가 약한 부분만 한 번씩 점검해 보기 바란다.

 

번역가라면 살아 있는 영어 표현을 주워 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번역가는 기본적으로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다. 입말보다는 글말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번역하는 원문에는 입말이 더 많이 담겨 있다. 번역가가 미드나 영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소설을 번역한다고 쳐보자. 다양한 캐릭터들은 각자 구현하는 말투도 성격도 다르기 마련이다. 번역가는 이를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평소에 다양한 캐릭터를 접해봐야 한다.

 

미드나 영화를 볼 때에는 가능하면 최신작을 보기 바란다. 언어의 주기는 생각보다 짧으며 최근 들어 더욱 짧아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google이나 uber 같은 단어가 동사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이러한 말을 번역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오늘날 사용되는 생생한 어휘가 담긴 교재로 공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어의 어근이나 다양한 용례를 설명해주는 책을 비롯해 언어와 관련된 에세이를 가볍게 읽는 것도 좋다. 신견식 번역가의 언어 에세이 《언어의 우주에서 유쾌하게 항해하는 법》이나 박산호 번역가의 《단어의 배신》 같은 책을 추천한다. 신견식 번역가는 20개가 넘는 언어에 통달한 외국어 괴물로 책을 읽다보면 그의 해박한 지식과 집념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단어의 배신》은 같은 단어에 담긴 여러 뜻과 그 기원을 알려주는 책으로 번역가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번역가는 알고 있는 외국어 단어가 많을수록 유리한 직업이다. 사전을 두고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가면서 번역해도 좋지만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단어가 많을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번역 속도가 빨라진다. 위에서 언급한 방법들로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어휘가 향상되겠지만 어휘력 확장을 위한 공부를 별도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하루에 5개 정도씩 깊이 있는 공부를 해도 좋다. 단 고등학교 때 했던 단순한 암기 방법에서 벗어나 반드시 예시문과 함께 익히고 영영 사전을 통해 뜻을 확인해야 한다. 번역가에게 도움이 되는 단어 공부와 관련해서는 김고명 번역가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에 잘 나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https://libraryoftranslatorj.tistory.com/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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