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번역(출판번역가의 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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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Life/번역가 되는 법

출판번역(출판번역가의 적성)

by 글 쓰는 번역가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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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번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출판 번역가들은 어떤 책이 새로 나왔는지, 어떤 책이 인기가 있는지, 누가 번역했는지 늘 궁금해한다.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굳이 궁금하지 않을 일들이다.

 

그렇다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출판 번역을 할 수 없을까? 난 이렇게 되묻고 싶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굳이 출판 번역을 하고 싶어 할까?

 

긴 원문을 번역하는 고독한 과정은 생각보다 큰 인내를 요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출판 번역가는 이 과정을 즐긴다. 나중에 출간된 책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출판 번역에 종사할 수는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 비해 조금은 더 힘든 마음으로 이 일을 하지 않을까 싶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출판 번역에 맞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블로그를 운영하거나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든 좋아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더 좋아지기 마련이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잘하게 되면 글쓰기가 더욱 좋아지는데, 이는 출판 번역을 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글쓰기만큼 출판 번역에 도움이 되는 공부가 없기 때문이다.  

 

작업 주기가 긴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출판 번역에 적합하다. 주기가 길면 번역가가 하루 일정뿐만 아니라 몇 달 일정을 미리 조정할 수 있다. 전체 기간 내에 완성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급한 일이 있을 때면 며칠 번역을 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다. 몸이 아플 때는 며칠간 쉬어도 되며 하루치 번역 분량을 잘 조절하기만 한다면 아무 때고 여행을 다녀와도 무방하다. 주기가 짧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이나 그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출판 번역이 좋다.

 

간혹 전공 분야의 책을 번역하고 싶어서 출판 번역에 뛰어든 사람들 있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전공 서적들이 시중에 꽤 많기 때문이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처음에는 그냥 한두 권으로 시작했다가 아예 직업을 전향한 사례도 있다.

 

한두 권까지는 쉬운데 그 이상으로 이어지기가 힘든 것이 출판 번역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역서를 갖고 싶은 마음에 도전했다가 생각보다 번역 과정이 힘들어 혹은 돈벌이가 별로라 금방 포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나 역시 도중에 회의감이 들었던 적이 있다. 책 번역 자체는 정말 즐거웠지만 번역을 마친 뒤 수중에 들어오는 번역료를 보면 이 길을 계속 가도 괜찮을지 한숨만 나왔다. 당시에는 에이전시를 통한 거래가 대부분이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한 달 내내 열심히 번역했는데 책 한 권에 5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을 받고 나면 진이 빠지기도 했다. 내가 좋아서 택한 길이지만 ‘정말 잘한 일일까, 이 길이 맞는 것일까?’하는 고민 속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내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 날이 올 테니 그때까지 실력을 갈고닦는 기간으로 생각하자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기술 번역과 병행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방안도 생각했다. 적지 않은 돈을 대학원에 투자했는데 그 시간과 노력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무조건 출판 번역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나처럼 평범한 길을 따라 출판 번역가로 데뷔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러한 시절을 겪을 것이다. 이 시기를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일이 없더라도 내가 뿌려놓은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는 날이 올 거라 믿으며 다른 일을 하며 그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계속해서 공부하며 또 다른 기회의 문이 열릴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한다.

 

출판 번역가가 되려면 문학 번역과 비문학 번역 중 어떤 분야가 나와 맞을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문학 번역을 하려면 문화적 지식이 풍부해야 하며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고 번역할 줄 알아야 한다. 소설가 뺨치는 문장 구사 능력도 필요하며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사명감도 빼놓을 수 없다.

 

나와 문학 번역이 잘 맞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외국어로 된 소설을 한 권 직접 번역해 보면 된다. 화자 별로 어떠한 말투를 구사할지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등 비문학 번역에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다양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런 작업이 흥미롭게 느껴진다면 문학 번역가로서의 소질이 있을지도 모르니 일찌감치 그 길로 들어서도 괜찮을 것이다.  

 

문학 번역을 제외한 비문학 번역에는 실로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 문학 번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입이 용이하지만 그렇다고 비문학 번역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철학, 역사, 예술 등의 인문학 분야는 내용이 어렵고 다양한 지식을 요할 뿐만 아니라 적절하고 쉬운 한국말로 푸는 과정도 녹록치 않다. 비문학 번역의 경우 어떠한 책을 맡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광범위한 분야를 오가는 게 싫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전문 분야를 정해 놓을 수 있겠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 번역가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지 말자.

 

기술 번역, 영상 번역, 출판 번역 중 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것이 출판 번역이다. 기술 번역은 난이도에 따라 다양한 텍스트가 존재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다. 번역을 의뢰한 고객 한 명만 만족시키면 되기 때문에 그 고객의 기대치만 충족시키면 된다. 하지만 출판 번역은 독자라는 거대한 잠재 고객이 존재하므로 아무에게나 책 한 권을 맡기지 않는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을 평생 할 각오가 된 사람이 출판 번역에 맞는 이유다.

 

https://libraryoftranslatorj.tistory.com/198

 

출판번역, 영상번역, 기술번역 선택

대부분의 번역가가 한 가지 분야만을 고집하지만 생계형 번역가라면 출판 번역, 영상 번역, 기술 번역 사이에서 좁히기와 넓히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자신의 주된 분야에서 벗어나 관심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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