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번역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참고 도서가 많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번역 일을 조금씩 맡다가 엉뚱하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당시, 저의 유일한 지침서는 김우열의 <나도 번역 한 번 해볼까?> 뿐이었죠.
아직까지도 갖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직접 겪어본 결과 모든 일이 그렇듯 다 맞지도 그렇다고 다 틀리지도 않더군요. 그래도 그때는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그뿐이었던 터라 그 존재만으로도 황송할 뿐이었죠. 교보 문고에 가서 그 책을 집어 들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주간 번역가>라는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김우열 번역가는 "번역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연재 글도 발송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슬아"가 하는 연재 서비스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무에서 시작해야 했던 저에게는 한 줌의 정보라도 귀했기에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저 높은 위치에 도도히 서 있는 유명한 번역가들은 번역가로서의 삶을 담은 에세이는 낼지 몰라도 어떻게 번역가가 되어야 하는지는 좀처럼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다들 명확한 경로가 없었던 탓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아르바이트로, 아는 편집자가 한 번 해보라 해서, 그렇게 시작한 경우가 많았을 테니까요.
반면 지금은 정보가 넘쳐납니다. 누구나 저자가 되는 시대에 당연히 글 잘 쓰는 번역가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죠. 책도 분야 별로 그러니까 출판, 기술, 영상 번역 등 세분화되어 있고 입문 방법에서 공부 방법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불과 10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이죠. 앞으로 10년 후에는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지 발 빠르게 대처하는 스타일이 되지 못하는 저이지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처음 책을 번역한 것은 2011년입니다. 대학원 1학기를 마친 방학이었죠.
한정된 길을 걸어온 저는 내가 다른 세계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을지 정말이지 너무 궁금했기에 한 학기를 마치고 바로 일을 시작해 보았는데요, 출판이나 편집 이런 쪽에 문외한이었던 저에게는 모든 경험이 신선했습니다. 돈을 뜯기는 경험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고요.
이제야 그나마 제가 생각하는 어느 정도의 기준에서 돈을 받고 있지만, 번역가라는 세계는 견고한 땅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제는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점치는 일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죠. 모든 것이 너무나도 쉽게 바뀌는 지금, 제가 10년 전에 택한 진로가 앞으로도 저에게 같은 무게로 다가올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10년 후 번역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저는 번역을 하고 있겠죠. 부디 그때는 지금보다 실력이 더 출중해져 조금은 더 괜찮은 책들을 번역하고 있기를. 아이들이 자라 내 시간이 많아졌을 테니 그 시간을 이용해 기획도 더 해보고 공부도 더 하고 있기를. 그리고 번역만으로는 정말 먹고살기 힘드니 부수적인 일에도 눈을 돌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10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버렸는지 아는 저로서는 향후 10년을 그려보는 일이 마냥 설레지만은 않습니다. 허나 미래에는 분명 새로운 일들이 생겨날 테고 그때 제가 서 있을 지점을 가늠해 보는 일은 언제나 조금의 설렘을 동반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잘 살아야 하겠죠. 그때에도 나의 지난 10년을 반추할 수 있다면 그건 제가 잘 살고 있고 있기 때문일 거라 믿습니다.
https://libraryoftranslatorj.tistory.com/66?category=85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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